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스터 니미츠 (문단 편집) == 기타 == * 1976년 영화 미드웨이에선 [[헨리 폰다]]가, [[미드웨이(2019년 영화)]]에선 [[우디 해럴슨]]이 연기했다. 특히 우디 해럴슨은 딱 보기만 해도 니미츠라고 알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선 평범한 백인 남성으로 나오긴 하는데 [[미드웨이 해전]]을 앞둔 미 해군 전력의 상황에 낙담해 "이런 '''니미'''! 움직일 수 있는 항모는 2척밖에 없는데."라고 한마디 해줘서 [[굽시니스트]] 특유의 [[언어유희]]를 보여줬다. 물론 그후로 다들 알다시피 파손된 항모 요크타운을 3일 동안 미친 듯이 수리해 합류시킨다. * 1980년 영화 [[최후의 카운트다운]]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니미츠급 항공모함]] 1번함 니미츠가 [[F-14]]를 가득 실은 채로 아직 니미츠가 '''소장'''이었던 [[진주만 공습]] 전날로 [[타임슬립]]한다. 졸라 짱센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건 둘째치고 당시엔 상상도 못했던 [[헬리콥터]](...)의 위용에 넋이 나간 채 '''니미츠'''함에 탑승한 상원의원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루스벨트]]랑 니미츠가 나도 모르게 뭔 수작을 부린 거냐'''며 비명을 질렀다. * 아들인 체스터 윌리엄 니미츠 '''주니어'''(1915~2002)도 대를 이어 해군에서 복무하였는데, [[진주만 공습]] 때 잠수함 USS 스터전(Sturgeon)의 함장으로 근무했으며, 소장까지 진급했다. 니미츠 2세도 2차 대전에서 해군 십자장 1개와 은성 훈장 4개를 받았을 만큼 많은 공훈을 세웠고 부친의 후광에 힘입어 4성 제독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지만 전쟁 후 변화된 해군 장교로서의 가치관(제독들이 정치가에게 과도하게 종속되었다고 생각했다.)에 의문을 품었고 결국 전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종신 원수였으므로 아버지보다 빨리 퇴역했다. 하지만 아들은 2002년에 아내와 함께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했다. 아내가 말년에 시력을 잃었고 자신도 위장염과 울혈성 심부전으로 고생하였다고. 그래도 생몰년을 보면 알겠지만, 86세까지 장수한 편이다. 그 나이대에 건강 악화와 우울증 등으로 자살하는 고령자들이 꽤 있다. 부인과의 사이에 딸만 셋 두었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국 대통령이던 당시 소위후보생이었던 니미츠는 미국 [[해군력]]과 열강의 강대함을 전세계의 자랑하기 위해 조직된 [[대백색함대]] 중 캔자스함에 속해 일본을 방문한적 있는데 이 때 당시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의 주역이자 일본제국 해군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를 축하연에서 만나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 때의 정 때문이지 도고의 기함이었던 미카사가 클럽으로 전용되는걸 막고 복원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 모르는 사람들은 니미츠라는 이름을 일본군을 격퇴한 격전지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일본인 이름으로까지 여겨서 니미'''쓰'''라는 왜색 짙은 번역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독일어에서의 z를 '쯔'라고도 썼기 때문에 '니미쯔'는 독일어 Nimitz의 번역으로 가능한 표기이다. 슈바르쯔→슈바르츠(Schwarz), 쯔바이→츠바이(Zwei) 등. '니미쓰' 또는 '니밋쓰'라고 쓴 경우는 일어 표기인 ニミッツ의 중역일 가능성이 높다. ~~[[윌리엄 홀시|하루제]]보단 낫지 뭘.~~][* 실제로 [[김홍래]]가 번역한 국내 니미츠 평전을 보면 니미츠가 해군 자원자를 불합격시킨 가정의 어머니가 "니미츠란 이름을 가진 '''외국놈'''이 우리 건강한 아들을 퇴짜보냈어요!"라고 항의편지를 쓴 일화가 나온다.]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당시의 사고 장소로 알려진 [[괌]]의 니미츠 힐은 이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 [[약장]]을 많이 달고 다니는 것을 싫어해, 많이 달아도 6개, 보통은 해군 공로 훈장과 해안경비대 인명 구조장 은장 2개만 잠수함 장교 휘장과 함께 패용하는 편이었다. 위의 초상화 사진을 보면 약장이 간소하게 달린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미군 규정상 받은 약장은 모두 달고 다녀야 하나, 해군의 경우 평소에는 개인 선택으로 1줄로 줄여 달 수 있는 예외가 있고 육군에는 이 예외 규정이 없다. 때문에, 맥아더 장군은 니미츠 제독보다 받은 약장도 많은 데다 규정상 해군처럼 몇 개만 달 수도 없는데, 맥아더 장군의 평소 성격까지 겹쳐 과시욕이 니미츠 제독보다 강한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 온화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무른 사람은 아니었다. 함장 시절부터 부하 장교들에게 차상급자의 역할 수행 기회를 부여한 뒤 그 성과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유도했으며, 능력이 자기 기준에 못 미친다 싶으면 가차없이 쳐냈다. 정확히는 "무난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장교이다"라는 근무평정을 써 주었으나, 니미츠의 스타일을 아는 사람은 이를 보고 그 사람이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할 것"이라는 의미를 캐치했던 것. 철저하게 능력주의적인 인사 원칙을 고집했기 때문에 홀시나 미처처럼 인맥과 친분으로 어떻게 비벼볼 수도 없었다. 니미츠가 홀시, 스프루언스, 터너, 스미스 같은 개성 강한 장성들을 하나의 사령부 밑에서 원활하게 다룰 수 있던 데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 대부분 내용의 출처는 한국에도 정식 출간된 니미츠 전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